사색 - 편안한 고시원

고시원 그 1평 남짓이 내게 전부였던 때


고시원에서 살게된 이유


 가끔 집에 앉아서 창밖을 내려보고 있자면 문득 옛날에 잠시 머물렀던 공간이 생각납니다. 1년 정도 고시원에 머물렀으니 꽤 오래 지냈습니다. 신기하게도 많은 부분은 기억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밥을 어떻게 먹었는지 어떻게 씻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굉장히 작았던 방과 고시원 이름이 선명하게 기억이 납니다. '편안한 고시원'

 제가 직장을 구하던 시기도 일자리가 상당히 부족했었습니다.
유로존 위기 등으로 수출에 여파가 있었고 자연스레 기업들의 투자 위축과 일자리 감소로 이어졌었던 듯 합니다.

 대학을 졸업하기 몇 해 전부터 선배들의 취업이 조금씩 안되는 듯 하다가 제가 졸업하며 맞닥뜨린 현실은 생각보다 냉혹했던 것 같습니다. 현재 서울시 공무원 경쟁률이 22:1 정도 되는데 당시 서울시 공무원 경쟁률이 87:1 수준이었습니다. 아마 그 뒤로 조금씩 조금씩 채용 시장은 위축되었던 것 같습니다.


<연도별 9급 공무원 경쟁률>


 당시 비슷한 또래들은 IMF를 부모님들이 정면으로 부딪혔던 과정을 지켜봤기에 일단 생존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던 것 같습니다. 일자리를 구하는게 우선순위였고, 수많은 동기들이나 선배들이 합격하면 일자리가 보장되는 공무원 시험에 많이 몰렸습니다. 

 졸업하고 취업을 선택한 이들도 취업을 바로하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학생들은 면접관으로부터 공백기에 대한 질문을 막고 해당 기간동안 스펙을 쌓기 위해 1년의 졸업 유예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저 또한 1년을 졸업 조건을 갖추었음에도 위와 같은 이유로 유예를 신청했었습니다. 다행히 취준생의 기간은 1년으로 끝났고 한 회사에 운좋게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다만 직주근접을 희망하던 꿈은 산산조각이 나서 본가와는 60km 가 떨어진 지역으로 이사 했어야 했습니다.

 생각해보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 격차가 이미 많이 벌어졌던 상태였던 것 같습니다. 당시 초임으로 받았던 금액이 평균 대졸 기준 2,200~2,800만원 수준이었습니다. 반면에 대기업에서는 약 3,600만원을 초임으로 지급하고 있었으니 이미 당시부터 일반 기업 임금이 대기업의 60~70%에 해당되었던 셈입니다.

 당시 제 초임 또한 일반 기업 수준과 비슷한 수준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월 급여에서 주거비 부담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선택했던 것이 고시원이었던 것 같습니다.

고시원에서의 삶


 제가 머물렀던 고시원은 세월이 지남에 따라 없어진 듯 합니다. 찾아보면 2006년도에도 영업을 하시고 계셨고 2023년도까지 정보는 나오는 것으로 봐서 최소한 15년 이상은 운영하신 셈입니다.

 돈없는 시기에 머물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 주셨음에 감사하지만 감사함과는 별개로 인생에서 꽤 짧은 시간만을 지냈음에도 굉장히 힘들었던 것을 보면 이름과 다르게 그다지 편안하지만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방은 서로 마주보고 있는 구조였고 굉장히 조심스레 왔다갔다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방은 창문이 있는 코너방과 창문이 없는 방 두개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창문이 있던 방은 30만원 정도, 창문이 없던 방은 25만원 가량 했던 것 같습니다.

편안한 고시원의 복도

 저는 당연히 창문이 없는 방을 선택했습니다. 방 구조는 대부분 당시 고시원이 그러하듯이 매우 좁았습니다. 가로 폭 90cm 정도의 침대가 간신히 놓일 정도의 구조에 발 밑에 부분 위에는 책상이 놓여 있어 자다 일어날때 다리를 책상에 부딪히기가 부지기수였습니다. 


지냈던 고시원 방과 구조/색감이 비슷한 곳

 당연히 방에 화장실과 식사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없었기에 화장실은 공용으로 사용했으며, 밥은 당시 고시원에서는 밥솥에 밥을 제공하고 방으로 가져와서 책상 위에서 먹었던 것 같습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인지라 각종 불편함은 감수하고 이겨내고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 질 뿐더러 좁은 공간은 돈없는 가난한 자에게 그마저도 감사할 뿐인지라 불만을 뒤로하고, 제가 지금까지도 제일 기억에 남는 힘들었던 점은 바로 냉방과 난방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타들어갈 것 같던 한 여름에 그곳은 마치 벌들이 윙윙대는 벌집과 같았습니다. 좁은 공간 칸칸이 사람들이 있는데다가 창문이 없어 열기가 밖으로 나가지 못할때면 그곳은 금새 사우나처럼 변하고는 했습니다.

 그 더위를 이겨내기 위해서 모두들 방문 사이로 살림을 누가 보던 말던 활짝 열어두고 조금이라도 지나가는 바람을 잡아 자기 방으로 들이기 위해 선풍기를 이리저리 돌려보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고시원에서 출근할 쯤이면 정장으로 갈아입고 문을 나섰습니다. 아마 그 고시원에 못해도 20명 남짓 거주했던 것 같은데 그중에 정장을 입고 출근했던 사람은 저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깔끔하게 옷을 입고 출근하면 기분이 좋았어야 하는데 입고 있는 옷과 작은 방은 참으로 아이러니했습니다.

 퇴근하고 돌아오면 남자들만 바글바글했던 그 공간은 항상 시큼한 땀냄새로 가득했었고, 제게도 자연스레 그 냄새가 베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얇디 얇은 벽체는 옆방에서 나는 소음을 막기에는 충분하지 않아 밤이면 옆방의 TV 소리 / 야한 동영상을 감상하는 소리 / 전화 통화하는 소리 / 각종 소리들이 여과없이 전달되었습니다.

 그 좁은 방에서도 자고나면 다음날은 어김없이 밝아왔고 그렇게 시간이 지나갔습니다.

맺음말


 이후 1년여간의 뼈를 깎는 절약을 통해 좀 더 좋은 여건에서 거주할 수 있는 보증금을 모을 수 있었고, 그렇게 고시원에서의 삶은 끝났습니다.

 여름이 또 다시 다가옵니다. 가끔 날씨가 더워질 때면 어김없이 그때의 그 날이 생각납니다. 시간은 흘러 지금은 제가 지냈던 방만한 신발장을 집에 두고 있지만 그 시절이 제 삶에 강한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때가 생각날 때면 그것이 그 시절에 대한 그리움인지 아니면 지금의 삶과의 대비로 인한것인지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때의 그 곳은 제게 분명한 것을 남겨준 것 같습니다.

 바로 현재에 대한 만족 그리고 감사함을 느끼는 삶. 다시 그 상황이 되더라도 이겨낼 수 있다는 마음.
결국에는 힘들었던 것도 지나고 보면 추억인지라, 이제는 영원히 사라져버린 10년전 제게는 유일하게 돌아갈 곳이었던 1평 남짓한 공간. 지나간 그곳을 추억으로 남겨봅니다.



2014년 - 고시원의 모습


2025년 - 사라진 고시원, 건물의 외관도 깔끔하다. 



작성일 : 2025년 06월 18일
작성자 : Tokkipapa
웹주소 : www.tokkipapa.com

갱신일 : 갱신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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