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 마흔에 읽는 니체ㅣ장재형
마흔에 읽는 니체를 읽고
독서 후기
인생에서 40살이 주는 의미는 상당합니다. 생각해보면 20살에는 20살이 주는 의미가 상당했었고, 30살에는 30살이 나름대로 인생에 주는 의미가 상당했습니다.
제생각에 가장 큰 차이점은 20살, 30살에는 앞을 향해 열심히 달렸고, 40대에는 비로소 뒤를 조금 돌아 보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20살부터 60살까지 현재 법제속 정년을 생각했을때 40살은 딱 그 가운데의 지점이기도 합니다. 인생에서의 '반환점'인 셈입니다. 반환점 한가운데 서있는 40살은 여태까지 계획이 제대로 진행되었는지 그리고 수정할 부분은 없는지 신중하게 검토하고 나아가야 할 시기입니다.
일반적으로 철학 책들은 심오한 부분이 많아서 잘 손이 가지 않습니다. 특히 니체같은 철학자의 경우 해석하는 이의 입장에 따라서 긍정적인 부분과 부정적인 부분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난해하고 도발적인 언어로 기존의 철학 사상들을 전복함으로써 새로운 사상적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와 동시에 초인주의적 주장으로 엘리트 주의적이나 허무주의적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비판받기도 합니다.
다각적 시야에서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은 동시에 이를 받아들이는 이로 하여금 개인적인 해석의 여지가 많으며 동시에 이해하기 난해함을 뜻합니다.
그러나 '마흔에 읽는 니체'에서는 이를 쉽고 간단하게 풀어 설명합니다. 특히 저자는 독자층을 40대로 상정하고 니체의 사상을 중년의 삶에 빗대어 해석합니다. 이를 통해 읽는 이로 하여금 철학적 내용을 좀 더 현실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돕습니다. 따라서 독자의 공감을 불러오기에 효과적으로 보입니다.
아쉬운 점은 이 책의 전반적인 형태가 철학서가 아닌 저자의 개인적 해석에 따른 자기계발서의 양식을 닮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니체의 철학을 빌려 본인 자신의 삶에 대한 철학을 독자에게 관철합니다.
이 책의 많은 장에서 니체의 문장이 인용되지만, 그 철학적 맥락은 자주 생략되고 저자의 실용적 해석만 덧붙여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점은 철학가의 철학을 다각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야를 억제하고 독자에게 선입견을 제공합니다. 결국 이로인해 '니체'에게 접근하기가 가벼워졌을지는 몰라도 그에 대한 사상적 이해를 하는 것으로부터는 멀어질 수 있습니다.
니체가 말한 '초인(위버멘쉬)' 나 '영원회귀' 등의 개념은 단순한 자기 긍정과는 결이 다릅니다. 그러나 이 책은 때때로 니체를 자기계발형 멘토로 만들며 복잡한 철학적 사유를 편리한 조언 수준으로 가볍게 포장하고 있습니다.
이는 독자에게는 쉽게 읽혀질지 모르지만 정말로 철학자 니체의 철학과 의도에 다가갈 수 있었는가에 대한 의구심이 생깁니다.
추가적으로 저자는 독자 대상으로 '마흔'을 타겟팅 합니다. 그러나 정작 책에는 마흔에 대한 상징적 / 실질적 의미와 맥락은 없고 누구나 읽기 좋은 조언들이 가득합니다. 정작 '마흔'을 앞세운 제목이 아니라 20대쯤 읽었으면 좋았을 '누구나 읽는 니체'정도 제목이었다면 조금 더 받아들이기 좋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는 사실을 다른이의 조언이나 충고로써 다시 듣고 깨달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 책에 나온 삶의 방향에 대해 니체의 말을 빌려 전달하는 조언들은 제가 살아온, 그리고 살아올 방향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할 수 있게 해줍니다. 결국 이 책을 덮고 난 뒤 우리가 삶의 한 조각 즈음을 건져올릴 수 있다면 그것으로 이 책은 제게 역할을 다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읽다 멈춘 문장들
"마흔이 넘어야 심리적으로,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안정적인 삶을 유지한다. 그런데 안정적인 삶을 추구할수록 새로운 삶이라는 기회를 쉽게 단념하게 된다. 새로운 도전을 하기에는 두려움도 많아졌고 용기도 부족하다."
"'삶의 진정한 단계는 지배적인 사상이나 감정이 상승하고 하강하는 사이의 중간에서 잠시 동안 정지하는 시간이다. 여기에 다시 한 번 충족이 나타난다' 라고 니체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ㅍ> 에서 말한다. 고대 그리스의 회의론자들은 '판단 중지'라는 의미로 에포케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에포케는 원래 '멈춤' 또는 '무엇인가를 하지 않고 그대로 둠' 을 의미한다. 니체가 말한 상승과 하강 사이의 한가운데에 위치하는 그 짧은 정지의 시간에 바로 에포케가 필요하다. 다시 말해 상승에서 하강으로, 하강에서 상승으로 전환될 때 우리가 취해야 할 행동은 판단을 보류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대중을 위한 저급하고 품위 없는 글을 쓰는 이유에 대해서 니체는 자기 자신이 아닌 타인을 위한 글을 쓰기 때문이라고 질책한다. 즉 글은 독자만을 염두에 두고 쓸 것이 아니라 저자 자신을 위해 써야 한다."
"노예 도덕은 지배받는 자, 즉 노예들 사이에서 발생했다. 예를 들면 학대받는 자, 억압받는 자, 고통 받는 자, 자신에게 확신이 없는 자, 피로에 지친 자들의 도덕이 바로 노예 도덕이다. 그런데 이러한 노예는 주인 도덕을 호의적인 시선으로 보지 않고 증오한다. 이 감정이 바로 르상티망이다.
원한에 찬 노예는 자신에게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강자였던 지배자에게 반감을 가진다.
노예는 강자를 부정하다가 결국 '악한 인간'으로 규정하고 이와 대조적인 '선한 인간'을 생각해낸다. 그리고 그 선한 인간을 바로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판도라의 상자 안에 남아 있는 희망 덕분에 우리의 삶은 행복한 것일까, 아니면 불행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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