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 - 추억의 중식당
이름은 모르지만 맛은 남아있습니다.
지금은 없어져 버린 중국 음식점
가끔 요즘 너무 맛이 없어진 중국 음식을 먹고 있자면 유난히도 입에 맛이 맴돌아 생각나는 집이 있습니다.
오랜 시간 맛을 낸 음식들이 아닌 일률화된 조리방법과 각종 기성 제품 및 소스들의 발달로 인해 이전보다 깊은 맛, 고유의 맛이 있는 식당들을 떠올리기 쉽지 않아졌습니다. 만약 그런 이유가 아니라면 풍족한 현실 사회 속 이런 음식들을 이전보다 쉽게 접할 수 있어 배가 부른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린 시절 그 무렵 중국 음식은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나 맛볼 수 있었던 음식이었습니다. 배달로 먹는 중국 음식은 굉장한 별미였었고, 집안에 이사를 하거나 친구들이 모이거나 가족이 다 모일 때나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아쉽게도 기억에 남을 만큼 정신이 든 나이가 되었을 때는 이사 경험이 없어서 아마도 중국 음식을 먹을 기회가 인생에서 몇 번은 남들보다 적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배달 음식으로 먹는 경우도 드물었는데 중국 음식점에서 직접 요리를 시켜 먹는 경우는 더욱 드물었습니다. 제가 성장할 당시에는 학교의 졸업식이 있거나 큰 집안 행사가 있을 때는 그것을 축하하기 위해서 중국 음식점에서 식사를 했었던 문화가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유독 기억에 남는 중국 음식점이 한 곳이 있습니다. 가끔 아버지께서는 가끔 기분이 좋아지실때면 이곳에 어린 저를 이끌고 가셨었습니다.
그래봤자 그곳에 갔던 횟수는 아마 한 손으로 꼽을 정도였을 것입니다. 해당 중국 음식점에 방문할 때면 유독 동생이 같이 간 기억은 없고 혼자서 큰 키의 아버지의 뒤를 따라 말없이 걸었던 생각이 납니다.
해당 식당은 집에서 꽤나 먼 거리에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 당시 걸음으로도 30~40분 남짓은 걸어야 도착했을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지금 다시 거리를 보면 성인 걸음으로도 20~30분은 족히 걸리니 가까운 거리는 아닙니다.
중국 음식점이 인기였던 그 시절, 마음만 먹으면 쉽게 방문할 수 있는 집 옆의 중식당들을 제치고 그 먼 거리까지 걸어서 해당 음식점을 방문하는 것이 그 당시에는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모든 것이 새로울 나이에 음식의 '맛'이 인생에 큰 행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그당시 제게는 제 걸음으로 인한 힘듦의 크기가 음식 맛으로 얻을 수 있던 행복에 비해 컸던 시절이었습니다.
류산슬과 고량주
해당 음식점은 한자 간판에 꽤나 낡은 인테리어를 가지고 있었으며, 온통 빨간색 배경과 황금색 문양 그리고 글씨로 된 장식들이 도배가 되어있던, 겉에서 보나 안에서 보나 중국인 또는 화교가 운영하는 것임에 분명했던 중국 음식점이었습니다. 기억 속 모습에 아마도 2층이었던 것으로 기억이 납니다.
식당에 도착하면 한국말이 어눌한 꽤나 노령의 아주머니 한 분이 저희를 맞아주셨습니다. 아버지와는 안면식이 꽤나 있으신 듯 가벼운 인사를 주고받고는 주문을 받고 돌아가는 식탁에 간단한 밑반찬들을 세팅해 주셨습니다.
그리고는 주방에 당시에는 이해할 수 없었던 외국어로 내용을 전달했습니다. 아마도 그것이 제가 태어나서 처음 들은 외국어이자 중국어였을 것입니다. 그러고보니 돌아가는 식탁도 이때 처음 본것이었겠습니다.
지금은 없어져버린 중국 음식점 진흥관의 밑반찬 세팅 |
아버지께서는 항상 같은 메뉴를 주문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류산슬' 과 '고량주' 한병. 류산슬은 해당 식당에서 맛보기 전까지는 한번도 듣지도 보지도 먹지도 못해봤었던 중국 요리였습니다. 여러 식자재가 들어가 있고 그 안에 대나무의 순인 죽순이 조리되어 들어가 있다는 것도 이 때 처음 알았습니다.
지금은 없어져버린 중국 음식점 진흥관의 류산슬 |
미끄덩한 식감과 익숙하지 못한 식자재로 조리된 외국 음식은 어린 저의 흥미를 크게 끌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정과 인심이 넘쳐나던 그 시절, 요즘 요리되서 나오는 것과 다르게 이 음식점의 류산슬의 양은 제가 작았던 이유인지 정말로 사장님의 인심이 컸던 이유인지 많이도 나왔던 기억이 납니다.
아버지를 마주하고는 말없이 먹어도 먹어도 끝이 보이지 않던 요리를 다 먹고 일어날 쯤이면 그 작은 고량주 한병에 기분이 살짝 좋아지신 듯 했던 아버지의 뒤를 따라서 쫄래 쫄래 집까지 또 열심히 걸어왔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그 식당에서 같은 메뉴, 같은 방식으로 3~4차례 같은 경험을 한 뒤 '류산슬'이 무슨 음식인지 익숙하게 될 즈음부터 학교에 묶여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먼길따라 식당 방문하는 것보다는 빠르고 간편하게 처리할 수 있는 쪽으로 방향이 기울었고 자연스레 그 식당은 머릿속에서 잊혀졌습니다.
맺음말
가끔 어떤 음식을 먹을지 고민하다가도 딱히 먹고 싶은 음식이 없을 때면 불현듯이 머릿속에 이때의 기억이 떠오릅니다. 크나큰 아쉬움이 남는 이유는 이미 없어져 버린 식당으로 맛볼 수 없는 어린 시절의 음식에 대한 추억일지 아니면 그 시절에 대한 그리움일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십수년간 이름을 몰랐던 중국 음식점을 추억의 저 편 어딘가에 꺼내어 기록해 봅니다. 해당 식당은 2015부터 2017년 그 사이 어딘가 문을 닫은 것 같습니다.
성인이 되고도 세월이 한참 흐른 지금까지도 해당 음식점의 이름을 모르고 지내다가 갑자기 생각이 떠올라 어린 시절 걸었던 그 길을 더듬어 위치로 찾아냈으니 '어린 시절의 그 추억들은 생각보다 뇌리에 강하게 남는구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인천 주안의 '진흥관'
영업 당시 진흥관의 모습 (출처 : 카카오맵 2015) |
현재 진흥관이 위치했던 건물 (출처 : 카카오맵 20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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