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 완전 부부 범죄ㅣ황세연
황세연 작가의 완전 부부 범죄를 읽고
독서후기
황세연 작가의 '완전 부부 범죄'를 읽게 된 계기는 단순했습니다. 초록색의 강렬한 표지와 ‘완전 부부 범죄’라는 제목 때문이었습니다. 분명 흥미를 끌지만, 쉽게 손이 가지 않는 제목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책을 읽을 때 특정한 문학 형식이나 장르에 편중되지 않는 편입니다. 그래서 독서 대상을 고를 때 제목이나 표지에서 호기심이 생기면 일단 책을 펼쳐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게 고른 책은 먼저 빠르게 훑어본 뒤, 흥미가 생기면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합니다. 그런 점에서 황세연 작가의 한국형 추리소설은 저에게 다소 낯선 장르였습니다.
이 책은 총 8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편마다 등장인물과 사건의 전개가 치밀하게 짜여 있습니다. 작품은 독자로 하여금 몰입감을 제공하는 동시에, 심리적으로는 묘한 저항감을 느끼게 합니다.
책은 시작부터 예사롭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작가 소개란에는 화려한 이력이나 수상 경력이 나열되기 마련인데, 이 책의 소개글에는 '글을 열심히 쓰는 이유가 직장에서 잘렸기 때문' 이라는 문장이 담담하게 적혀 있었습니다.
첫 단편인 〈결혼에서 무덤까지〉를 다 읽고는 책장을 잠시 덮고, 작가에 대해 검색해보게 되었습니다. 이미 여러 권의 책을 집필했고, 추리소설 부문에서 수상 이력도 있는 작가였습니다.
그렇게 작가를 검색하게 된 이유는, 첫 단편이 주는 강한 거부감 때문이었습니다. 묘사된 현장의 분위기와 시간의 흐름은, 마치 내가 그 공간에서 함께 지켜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생생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작가의 사건 묘사는 지나치게 현실적이었습니다. 그래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건 혹시 작가의 실제 경험이 아닐까?', '실제로 실행한 사건은 아닐까?' 혹은 '이토록 사실적인 묘사를 쓸 수 있다는 건, 살인이라는 주제 자체에 깊은 흥미가 있는 건 아닐까?' 하는 불편한 상상 말입니다.
하지만 이런 감정은 저만의 반응은 아닐 것이라 생각합니다. '완전 부부 범죄'는 그만큼 현실과 비현실, 일상과 범죄의 경계를 교묘하게 뒤섞으며 독자의 심리를 자극합니다.
작가의 문체는 담백합니다. 그러나 그 안에는 오히려 불쾌할 정도로 생생한 장면과 차갑게 계산된 디테일이 녹아 있어, 독자의 감정을 깊이 뒤흔듭니다.
각 단편은 인간 관계를 중심으로 전개되지만, 사랑과 이해보다는 복수, 살인, 침묵이 더 강하게 부각됩니다.
관계란 것이 얼마나 다양한 방식으로 균열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며, 그 끝에 반드시 극단적인 ‘범죄’가 존재해야만 하는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듭니다.
읽는 내내 저는 반복해서 자문했습니다. '이건 정말 허구인가?' 너무도 현실적인 감정 묘사와 치밀한 범죄 설계, 무심한 듯 이어지는 결말은 이 작품의 중심이 단순한 '범죄'가 아니라, 그 이전의 '관계의 붕괴'에 있음을 말해줍니다.
몇 번이고 책장을 덮고 싶을 정도로 불편함을 느꼈지만, 바로 그 불편함이 이 작품의 미덕이라 생각합니다. 불쾌함을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하게 만드는 글쓰기, 인간관계의 내면을 해부하듯 파고드는 시선은 '완전 부부 범죄'를 단순한 장르소설이 아닌, 인간 심리에 대한 문학적 고발서로 승화시킵니다.
책을 덮고 난 후에는 묘한 여운이 남습니다. 읽는 내내 불편했지만, 읽고 나서는 쉽게 잊히지 않는 책.
그것이 제 마음속에 남은 가장 솔직한 감상입니다.
아울러, 작가는 8편의 단편 순서조차도 독자의 심리 흐름을 고려해 배열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첫 단편인 '결혼에서 무덤까지'는 시작에서는 불편함을, 중반에는 몰입을, 후반에는 탄식을, 마지막에는 씁쓸한 여운을 남기며 읽는 흐름을 완성합니다.
책 말미에 실린 작가의 글과 백휴 평론가의 해설도 인상 깊었습니다.
이 작품을 통해 새로운 장르의 매력에 눈뜨게 해준 작가에게 감사하며, 작가의 초기작이자 전업 작가의 계기가 되었다는 '염화나트륨'도 기회가 된다면 읽어보고 싶습니다.
읽다 멈춘 문장들
"26세 때 스포츠 서울 신춘문예에 당선된 후 10년간 전업 작가로 소설을 써온 한편, 영화 시나리오 작가, 라디오 방송 작가, 광고 콘티 작가, 국가정보원 추리퀴즈 작가로도 활동했다. 결혼 후 전자책 출판사에서 10년간 편집자로 일했다. 회사 합병으로 직장에서 잘린 뒤 다시 열심히 소설을 쓰고 있다."
"이놈의 영감탱이, 또 무슨 짓 하느라 전활 꺼놓은 거야?"
"최순석은 나의 친한 친구 이름이다. 최순석은 나의 첫 장편 소설 '나는 사랑을 믿지 않는다'에 자기 이름이 형사로 등장한다는 사실에 고무되어 책을 열권이나 샀다. 그게 이유다. 책에 계속 이름을 넣어주면 앞으로도 계속 책을 열 권씩 사지 않을까..."
"'인생의 무게'를 읽고 작가 황세연과 결혼할까 말까 심각하게 고민했다는 아내"
"무료한 시간을 때우기 위해 추리소설을 읽는 독자가 굳이 작가의 고유한 특성과 작가가 표현하려는 밑바닥 메시지까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을까? 그런데도 황세연의 개성은 아주 강렬해서 우리를 꼼짝없이 유혹해 자신의 세계 안으로 끌어들이고, 우리에게 질문하고, 자신의 세계관을 거부한다면 '너는 대체 어떤 세계 속에서 살고 있는지' 묻고 있는 것 같다."
"닫힌 세계, 출구가 없는 폐쇄된 세계, 끝없이 직진하면 결국 자신의 출발점으로 되돌아오는 원환적인 세계 내에서 작동하는 변증법적 원리란 무엇일까? 이게 황세연의 궁극적 물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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